Article 6 시대의 공급 병목과 탄소사업의 생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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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시장의 수요 기반이 달라지고 있다. 파리협정에 따른 각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이 본격화되고,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는 2027년부터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간다. 기업들도 단순히 저렴한 크레딧보다 출처와 감축 효과가 명확하고 국제적 사용 요건을 충족한 크레딧을 찾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필요로 하는 고품질 크레딧의 공급은 기대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전 세계에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사업 기회가 많지만, 잠재적인 감축량이 곧바로 거래 가능한 탄소크레딧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업을 설계하고 감축량을 측정·검증하는 단계를 넘어, 호스트국의 승인을 받고 필요한 경우 상응조정을 거쳐 국제적으로 이전할 수 있어야 한다.
Article 6 시대의 공급 부족은 감축사업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감축 가능성을 실제로 승인·발급·이전 가능한 크레딧으로 전환하는 제도와 금융이 아직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발급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탄소크레딧
과거 청정개발체제(CDM)에서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방법론을 적용해 사업을 등록하고, 감축실적을 검증받아 크레딧을 발급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 과정이었다. 파리협정 제6조 체제에서는 여기에 호스트국의 판단과 책임이 크게 강화되었다.
Article 6.2를 통해 감축성과를 다른 국가의 NDC 달성에 사용하거나, Article 6.4에서 발급된 감축성과를 국제적 감축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호스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동일한 감축성과가 판매국과 구매국에서 중복 계산되지 않도록 상응조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반면 호스트국이 국제적 사용을 승인하지 않은 Article 6.4 감축성과는 감축기여단위(MCU)로서 호스트국의 감축이나 자발적 기여 등에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사업에서 발생한 감축성과라도 정부 승인 여부와 사용 목적에 따라 시장 접근성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탄소크레딧의 경쟁력이 방법론과 검증 결과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국의 NDC 전략, 승인정책, 등록부 및 보고체계와의 정합성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제 시장이 확인해야 하는 것은 “크레딧이 발급되었는가”만이 아니다. “어떤 목적으로 승인되었는가”, “상응조정이 보장되는가”, “언제 이전할 수 있는가”까지 확인해야 한다.
높아진 무결성과 낮아지는 사업성의 역설
환경건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은 탄소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보수적인 베이스라인, 엄격한 추가성 입증, 강화된 모니터링과 검증은 과대 산정을 방지하고 감축성과의 신뢰성을 높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 강화는 현장에서 새로운 비용과 위험으로 나타난다. 기존 사업도 Article 6.4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최신 방법론과 보수적인 산정기준을 적용하면 예상 발급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모니터링 장비와 데이터 관리체계를 보완하고, 환경·사회적 영향을 추가로 입증하기 위한 비용도 발생한다. 여기에 등록·검증 비용과 호스트국 수수료, 감축성과 공유, 상응조정 비용 등이 더해진다.
문제는 크레딧 가격이 이러한 비용과 위험을 반드시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감축량은 줄고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정부 승인 시점과 최종 이전 물량은 확정하기 어렵다. 사업개발자와 투자자는 사업 초기에 자금을 투입하지만, 수익은 수년 후 크레딧이 발급되고 판매된 뒤에야 발생한다.
결국 시장이 고품질을 요구할수록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의 개발은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나타난다. 무결성 기준만 높이고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경제적 구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시장이 원하는 고품질 공급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개도국은 단순한 공급처가 아니다
호스트국의 승인 지연을 단순한 행정 문제로만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파리협정 체제에서 감축성과는 개도국에도 중요한 국가 자산이다. 해외로 이전된 감축성과에 상응조정이 적용되면 호스트국은 그 감축량을 자국 NDC 달성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호스트국 정부는 어떤 부문과 사업의 감축성과를 해외로 이전할 것인지, 자국 NDC 달성을 위해 어느 정도를 보유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해외 이전을 승인했을 때 확보되는 투자와 기술, 일자리와 사회적 편익이 상응조정에 따른 국가적 부담보다 충분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이는 국제감축사업이 저렴한 감축량을 확보하는 거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도국의 에너지 접근성, 보건, 고용, 생태계 회복과 같은 개발편익을 만들고, 현지에 기술과 역량을 축적하며, 수익이 공정하게 공유되는 협력사업이어야 한다. 그래야 호스트국도 감축성과의 국제 이전을 자국의 기후·개발전략과 연결해 승인할 수 있다.
개도국을 크레딧 공급처로만 보는 시장은 지속되기 어렵다. 감축성과의 구매국과 호스트국이 공동의 이익을 확인할 수 있을 때 Article 6가 지향하는 협력적 접근도 성립할 수 있다.
고품질 공급을 살리는 네 가지 조건
첫째, 예측 가능한 승인체계가 필요하다. 호스트국은 승인 대상, 평가기준, 처리기간, 수수료, 감축성과 공유비율과 상응조정 절차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투자자는 사업 착수 전에 승인 가능성과 비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선투자 위험을 분담하는 금융구조가 필요하다. 크레딧이 발급된 후에만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는 초기 투자비가 큰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 장기구매계약, 선구매, 최저가격 보장, 보증과 혼합금융 등을 통해 정부·구매자·투자자가 위험을 나누어야 한다.
셋째, 사업 초기부터 최종 사용시장을 정해야 한다. Article 6.2, Article 6.4, CORSIA와 자발적 탄소시장은 승인과 방법론, 발행연도, 라벨 및 사용 조건이 서로 다르다. 사업을 먼저 개발한 뒤 판매처를 찾는 방식이 아니라, 타당성조사 단계부터 예상 구매자와 사용 목적을 고려해 방법론·승인·모니터링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넷째, 호스트국에 남는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감축성과 중 일부를 자국 NDC에 활용하도록 남기거나, 사업 수익을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기술이전과 역량강화를 병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탄소수익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편익까지 포함한 가치 제안이 있어야 정부 승인과 지역사회의 지지를 함께 확보할 수 있다.
무결성과 사업성은 함께 가야 한다
탄소시장은 감축량만 많으면 인정받던 시대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보수적인 감축량 산정, 투명한 데이터, 환경·사회적 안전장치와 국가 간 이중계상 방지가 크레딧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높아진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이 실제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탄소시장은 충분한 감축성과를 공급하지 못한다.
Article 6 시대 탄소시장의 다음 과제는 기준을 더 높이는 데만 있지 않다. 그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이 개발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 검증·발급되고, 필요한 시장으로 이전될 수 있도록 공급 생태계를 완성하는 데 있다.
무결성과 사업성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무결성 없는 사업은 시장의 신뢰를 잃고, 사업성 없는 기준은 실제 감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두 조건을 함께 충족할 때 비로소 개도국의 감축 잠재력은 국제사회가 신뢰하고 사용할 수 있는 감축성과로 전환될 수 있다. 이것이 Article 6 시대에 탄소사업이 살아남고, 탄소시장이 실질적인 기후행동의 수단으로 기능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