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정원도시, 기후적응의 새 길을 열다
본문

서희원 정책연구팀 선임연구원
감축에서 적응으로: 정책 연구를 넘어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폭염과 홍수, 도시 열섬과 생태계 붕괴는 이미 도시의 구조적 리스크가 되었다. 그럼에도 기후정책은 오랫동안 ‘감축(Mitigation)’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적응(Adaptation)’은 주변 의제로 취급되었고, 주로 개발도상국의 취약성 대응 과제로 인식되었다. 기후변화센터는 이러한 한계를 문제의식으로 삼아, “이미 변화한 기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고 국내외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실질적 전환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2025년 9월, 기후변화센터와 정원도시포럼은 「제1차 기후위기 시대의 정원도시 세미나」를개최해 “도시를 식히는 정원, 기후적응의 미래” 주제로 정원과 도시숲을 단순한 조경이나 휴식 공간이 아니라, 기후적응의 핵심 인프라이자 도시 회복탄력성의 기반으로 재정의했다. 이를 통해, 3가지 시사점을 도출했다.
1. 감축 중심 정책에서 적응 중심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전환의 필요성
2. 법, 제도, 정책 기반이 없는 정원도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현실 진단
3. 시민이 체감하는 생활밀착형 녹지가 기후적응의 실질적 해법이라는 공감대 마련
제주 정원도시토크, ‘조성’이 아닌 ‘회복’이라는 관점 전환
그 연장선에서 열린 ‘제주, 정원도시토크’에서는 정책 논의를 지역 현장을 중심으로 다시 는 자리가 되었다. “정원도시,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 제주는 ‘관광의 낙원’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이 되었다. 이때 정원은 꽃을 심어 경관을 꾸미는 것이 아닌, 기후 재난을 견디기 위한 ‘생활 기반’으로 다시 정립된다.
기후위기를 ‘서서히 차오르는 물’로 인식할 때, 우리의 대응은 장기적 구조 전환이 되어야 한다. 기후변화는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같은 크기로 닥치지 않는다. 가장 취약한 사람부터 먼저 무너진다. 그래서 적응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사회적 장치”의 문제이고, 지역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정원과 도시숲, 녹지는 이것의 핵심이다. 여름의 열기를 낮추고, 빗물을 잡아 홍수를 완화하며, 생물의 피난처를 제공하고, 시민의 정신적 회복을 돕는다. 중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제주에서 ‘정원을 복원한다’는 말은 때로 개발로 오해받는다. 그래서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에 집중한 발제와 토론에서는 제주만의 전략이 논의되었다.
첫째는 ‘제주다움’이다. 현무암, 용천수, 화산회토, 바람과 강한 햇빛 같은 자연 조건은 정원 설계의 자산이다. 제주형 정원은 과시적으로 돋보이기보다, 주변의 자연공간이 더 잘 보이게 하는 ‘조연’이 되어야 한다. 인위적 장식을 덜어내고, 제주 풍토에 맞는 서식처를 복원하는 자연주의 접근은 ‘바탕’이 된다. 생물권의 순환과 다양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 농약과 살충제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이 정원도시의 윤리가 된다.
둘째는 ‘빼기’ 전략이다. 제주는 덜어내는 것이 때로 더 아름답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리한 시설 확장이나 획일적 조성보다, 기존의 풍경을 보존하고 회복시키는 선택이 도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제주 정원도시의 차별화는 보존, 복원, 회복의 선택에서 나온다.
셋째는 ‘자연문명’이라는 비전이다. 정원을 도시 정책의 주변부가 아닌 탄소중립, 기후적응, 관광, 교육, 산업을 잇는 플랫폼으로 여길 때 제주가 제시한 모델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의 실험이 된다. 도시공간에서는 생활권 탄소중립 정원, 학교정원, 환경정원처럼 일상 속 녹색공간을 확장하고, 자연공간에서는 원생 자연의 가치를 극대화하며 같은 지역 자산을 살리는 ‘이원 전략’이 구체적 실행 틀이 된다.
정원은 결국 ‘무엇을 다시 살렸는가’로 평가받을 때 문화가 된다.
기후적응에서의 정원도시, 선언에서 실천으로
정원도시는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원도시’가 도시를 묶는 상위 개념이라는 문제 제기는 행정의 현실로 이어진다. 정원, 공원, 숲은 법체계와 관리주체가 다르고, 예산과 목표도 분절되어 있다. 산림, 도시계획, 생태복원, 문화관광, 기후정책이 하나의 공간 위에서 결합되지 못하면, 그럴듯한 계획도 현장에서 흩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은 2가지이다. 하나는 법, 제도, 예산의 ‘현실성’이다. 현장에서는 정원 설계, 발주, 관리의 근거가 불명확하고, 대형 사업이 대형 엔지니어링 중심으로 흘러 소규모 전문 주체가 배제되기 쉽다. 민간정원은 정원가가 기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반면, 공공정원은 예산, 감독, 발주 구조 속에서 역할과 책임이 분리된다. 이 간극을 줄이려면 교육, 실무, 자격, 발주, 예산, 데이터가 선순환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원이 무엇을 얼마나 흡수하고, 어떤 수종이 지역 기후에 적합하며, 관리비용과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정책이 정원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른 하나를 시민 참여를 가능케 하는 ‘조직된 구조’다. 정원도시는 시민 60-70%의 참여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행정이 직접 시민과 나설 때는 품이 많이 들고, 단기 성과 중심의 행정 문화와 충돌한다. 그래서 해법은 ‘민관 협력’ 에 있다. 지역 NGO와 지역협의체, 민간 전문가가 초반 기획부터 협력해 3~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참여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진주, 평택, 오산 등에서 확인된 민관 거버넌스 사례가 시사하는 것으로 행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의 전문성과 시민의 동력을 제도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지속성을 만든다는 점이다.
인적 자원의 경우 단순 가드닝 교육이 아닌, 제주의 기후와 식생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지역의 고유 식물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전문 인력, 즉 ‘지구 정원사’의 양성이 필요하다. ‘정원’이 곧 지역의 정체성과 경제, 교육, 관광을 잇는 플랫폼이 된다면, 그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람의 역량이 결국 정책의 성패를 결정한다.
정원박람회 역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경계 안의 완결성보다 주변 풍경과의 관계,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과정, 시민 참여가 살아 있는 운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정원도시의 경쟁력은 순간의 화려함이 아닌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아름다움과 연결성에서 나온다.
정원도시는 ‘선언’이 아닌 ‘실천’이다. 그리고 실천의 조건은 정원 한 곳이 아닌 도시의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데에 있다. 오는 4월 30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2차 기후적응 시대의 정원도시 세미나’는 ‘그린인프라 도시 사례’를 통해 현장 고민을 통합하고 구체적인 공간 전략과 실행 모델을 모색하고자 한다.
*지구 정원사 : 조경하다 열음은 지역의 기후, 식생, 생태를 깊이 이해하고, 서식처 복원과 정원 관리, 교육, 관광, 브랜딩까지 연결해 정원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설계, 운영하는 전문 인력 개념을 주창했다. 정원을 ‘지역의 생태와 문화를 지키는 역량’으로 확장하는 접근이다.

▲ 2월 23일(월), 제주도 서귀포시 베케 세미나실에서 '제주, 정원도시토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 : 환경과 조경)
-
[동정] “복합위기 시대, 도시의 길을 묻다”…최재철 이사장, 포항시 간부 대상 전략 강연
목록
-
[Activity] Chairman Jai-Chul Choi, Featured on KBS Radio…Highlighting the 140th Anniversary of Korea–France Rel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