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21세기 보릿고개와 먹거리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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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팀 한빛나라 박사
“루마니아는 기후변화로 인해 봄에도 눈이 내리는 등 이상기후현상을 겪고 있어요. 루마니아는 농업국가인데, 기후변화 때문에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고 또 농산물의 질이 하락하면서 농업이 큰 위기를 맞고있어요.”
지난 봄 기후변화주간을 맞아 개최했던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대학생 토크챌린지’에서 한 루마니아 학생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기후변화와 먹거리 문제를 들고 발언대에 나왔다. 실제 동유럽은 아프리카와 함께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의 취약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기후변화로 인한 먹거리 안보 문제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고,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슈 민감도나 파급력 측면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식량수요는 21세기 중반까지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증가에 따라 기본적인 식량수요가 느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을 중심으로 식습관의 서구화가 육고기에 대한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고 이는 곧 사료용 곡물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식량수요가 증가하는 원인은 또 있다. 경제발전과 식품유통시장시스템은 음식물쓰레기 발생을 증가시키고 우리들은 매일 엄청난 양의 음식물을 폐기하고 있다.
식량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 기후변화는 식량공급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기후변화는 농업용수의 안정적 확보를 어렵게 하고, 경작가능한 토지면적을 축소하고 농산물의 질과 수확률을 저하시킴으로써 농작물의 수확량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러한 수확량의 감소는 농산물의 가격상승을 초래하게 마련이고, 이는 빈곤국의 먹거리 안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안보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식량안보를 취약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농산물의 안정적 유통을 좌우하는 물류 인프라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는 지난 달 발간한 “글로벌 식량 무역의 관문과 취약성”(Chokepoints and Vulnerabilities in Global Food Trade)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는 더 강력한 태풍과 더 빈발한 홍수를 발생시켜 글로벌 식량무역의 길목이 되는 도로와 철도, 항구에 피해를 가져올 수 있으며, 기후변화 시대에 식량의 공급중단 문제를 해결할 우리의 국제무역 역량은 그리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식량인 밀, 쌀, 옥수수, 콩의 전 세계 수출량의 53%가 미국, 브라질, 흑해에서 발생하며, 한해 약 28억 인구를 먹일 수 있는 옥수수와 밀, 콩이 국제수송시스템을 통해 운반되고 있다. 문제는 세계식량무역이 나날이 증가하는데 반해, 식량의 운송은 소수의 몇 몇 주요 무역 거점에 집중돼있다는 것이다. 식량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거점이 해협, 운하와 같은 해상통로와 주요 곡물수출지역의 연안 및 육상수송인프라다. 예를 들면, 파나마 운하, 중국과 동남아 가축사료용 콩 무역량의 1/4이 이동하는 말라카 해협, 세계 밀수출량의 1/5이 이동하는 터키 해협, 미국 곡물수출량의 60%가 이동하는 내륙수로들, 세계콩무역량의 1/4이 이동하는 브라질 동남연안의 4개 항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 수출량의 60%를 운반하는 철도 등이 그것이다.
곡물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인프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국의 사료용 제외 곡물 자급률은 48.4%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편이며, 특히 사료용 곡물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변화에 글로벌 식량무역 거점지역 중심의 지정학적 갈등요인이 결합될 때 식량안보 리스크는 증폭될 수 있다. 보고서가 지적하듯, 글로벌 식량무역 인프라는 식량안보 문제를 고려하는데 있어 줄곧 그 영향력이 간과되어 왔으며, 특히 세계 각국이 에너지 안보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와 비교해보면 이러한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러한 식량무역 인프라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보고서는 식량위기관리 및 안보계획 수립 시 무역인프라 분석을 고려할 것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글로벌 무역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동시에 글로벌 긴급대응메커니즘을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지난 8일 막을 내린 G20 정상회의의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한 식량안보 강화 공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세계 정상들은 특히 UN식량농업기구(FAO) 산하 농업시장정보시스템(AMIS)의 기능을 강화하여 글로벌 식량시장의 투명성을 증진하여 시장기능을 개선하고 곡물가격의 변동을 줄임으로써 식량안보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투명한 식량 무역시스템은 중요한 기후변화적응 대책의 일환으로, 글로벌 농업생산의 패턴을 변화시키고 생산단가를 낮추는 동시에 식량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로컬 농업을 활성화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지역 내에서 생산,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글로벌 무역거점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식량안보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외수송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음식물쓰레기 발생을 줄임으로써 쓸데없는 식량수요 자체를 줄이는 것은 기본이다.
기후변화로 경작가능한 토지면적이 줄고 농업용수가 부족해서, 급격한 인구증가로 식량공급이 불충분해서, 식품유통시장불균형으로 식량 과소비가 심해져서, 식량 무역통로가 막혀서… 오늘날 보릿고개는 훨씬 복잡한 이유로 더 자주, 혹은 더 길게 발생할 수 있다.
21세기 보릿고개는 ‘식량접근성’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 접근성 리스크는 많은 경우 정치·경제적 논리에 근거한 인위적 산물이다. 21세기 보릿고개가 걱정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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